수중호흡
익명
숨 쉬는 법을 잊은 지 오래였다.
소설가 김예림이 적어 내린 첫 문장이었다. 그는 문득 자신의 코 밑에 손가락을 대고 숨을 크게 쉬어 보았다. 살결에 와닿는 감각은 반드시 숨이었다. 하지만 예림은 자신이 언젠가부터 숨 쉬는 법을 잊었음을 상기했다-그러니까 숨이 붙어있다는 느낌이 없었다. 언제나 죽은 듯 살았고 살아있는 듯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고 생각했다.
그와 대조적으로 김예림의 문체는 당장이라도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다는 평이 자자했다. 그야 당연했다. 예림은 늘 살아있었던 삶을 동경했다. 그게 문체에 그대로 묻어나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생활을 공개하지 않는 그를 늘 궁금해했지만, 그는 공개적인 곳에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그것이 사람들을 더 열망하게 만들었다. 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려도 종이 커버에 기재되는 작가에 대한 정보랄 것도 없이 이름 석 자가 다였다. 필명을 쓰는 건 아니지만 예림이란 이름이 흔하기에 찾을 방법이 드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주목받는 소설 작가인 그가 소설 작가인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족과는 인연을 끊었고 다른 관계도 다 바랜 지 어언 몇 년이었다. 얼굴을 아는 사람도 소수의 출판사 관계자가 다였고 그들도 다른 것은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안다고 할 수 없었다.
김예림은 이번 작품을 마지막으로 글을 쓰지 않을 계획이었다. 죽은 듯 살기보다는 그냥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 전에 여행을 좀 다녀와야겠다. 그뿐이었다. 그러고도 남는 재산은…손승완 앞으로 부칠까.
그동안 소설로 내지 못한 이야기를 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잠적. 만약 이걸 읽는다면 날 알아볼까? 어쩌면 승완은 김예림의 소설을 이미 읽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예림이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도 승완이 마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김예림이 아는 손승완이라면 반드시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생각이 잠시 다른 곳으로 새버린 걸 알았지만 예림은 그냥 흘러가는 대로 뒀다. 이런 회상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손승완이 누구인지 설명하려면 예림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다.
열일곱 김예림은 학교에 적응하느라 바빴다. 의외로 변화에 대한 반응이 느려서 한 학기를 꼬박 고생하고 이리저리 치였다. 온통 처음 겪는 것 투성이었고 삶이 내 것 같지 않았고 그래도 열심히 굴러다녔다. 동아리도 꽤 많이 들었다. 개중 제대로 기억나는 것은 몇 없지만 흐릿하게나마 허울은 남아있다. 승완과의 처음을 상기하자면-예림은 한순간도 승완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기에 상기보다는 그 상황을 단어로 나열해내는 과정에 불과했다-승완은 예림의 동아리 선배였다. 독서 동아리. 지금 생각해보면 나중에 이과로 빠지는 김예림에게 별로 득 될 것이 없는 곳이었지만 아무튼 예림은 승완을 거기서 처음 만났다.
그때쯤 예림은 우울감에 허덕이기 시작했다. 억지로 체제에 자신을 끼워 넣은 탓이었다. 낮에는 밝은 척하며 다녔고 밤에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왜 우는지 몰라서 울었다. 학교 가서는 또 괜찮은 척했다. 그러면서 누군가 괜찮지 않다는 걸 발견해주기를 원했다. 악순환의 반복에 모순투성이였다.
상처가 곪으면 터지기 마련이었다. 무작정 도착한 곳은 옥상이었다. 예림은 그곳의 문을 열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무의식에 숨어있던 기대와는 다르게 손잡이는 아주 쉽게 돌아갔다. 가장 먼저 방수 페인트의 초록색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먼지로 뿌연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디까지 회색빛일지 궁금해서 한 발씩 앞으로 디뎠다. 그러다 난간에 몸이 걸렸다.
몸이 순식간에 공중으로 붕 떴다. 손에 땀이 났다. 머리털이 삐쭉 섰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은 찰나였다. 뒤에서 누군가가 끌어안았다. 몸이 그대로 뒤로 당겨지더니 옥상 바닥으로 처박혔다. 아까 본 초록색 페인트의 차가운 감촉이 교복 셔츠 너머로 여실히 느껴졌다.
"너 미쳤어?"
승완이었다. 눕혀진 탓에 위로 올려다보면 보이는 얼굴이 놀란 듯했다. 일단 살았다는 생각에 눈물이 앞서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진짜로 죽을 뻔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김예림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깨닫는다.
승완은 그날 예림의 얘기를 모두 들어주었다. 그러면서 품도 내어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의 품이 고팠던 걸지도 모르겠다.
잠이 든 김예림은 꿈을 꿨다. 물로 가득 찬 유리병 같은 곳에 갇히는 꿈. 물속에서는 숨을 쉴 수 없으니까 물이 차오를수록 자꾸 고개를 쳐들었다. 결국은 물이 끝까지 차올라서 물을 잔뜩 먹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예림아, 예림아- 그 순간 유리병의 뚜껑이 열렸다.
"괜찮아?"
김예림은 손승완에게 손을 뻗었다.
곧잘 챙겨준 덕에 예림은 학교에 차차 적응해나갔다. 김예림은 이과, 손승완은 문과에 학년도 달라서 동아리 모임이 아니면 만날 일이 없는데 굳이 승완은 찾아왔다. 학교가 끝나면 예림이 허튼짓 못 하게 집이면 집 학원이면 학원까지 꼭 같이 갔다. 안 그러면 자기가 불편하다며 비 오면 우산까지 씌워서 데려다 줬다. 우산이 없으면 편의점에서 투명 우산 두 개를 사서 꼭 예림까지 씌웠다. 투명한 우산 위로 맺히는 빗방울이,
"예림아, 언니 지금은 일찍 가봐야 할 것 같아서 미안. 학원 들어가서 연락 꼭 해. 알겠지?"
"무슨 일인데요?"
남자친구. 아…. 손승완은 여태껏 김예림에게 남자친구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몰랐다. 김예림은 어설프게 배웅했다. 떠나는 승완의 발걸음이 질질 끌렸다.
다정도 병이다. 이 말은 두 번 맞는 말이었다. 마냥 행복했다면 좋았겠지만, 손승완의 타고난 다정함은 김예림을 더 넓은 병에 가둔 셈이었다. 넓긴 하지만 그래도 병 안이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쉽게 괜찮아질 리가 없는 거였다. 친구라고 만들어낸 관계들은 당연히 승완보다 못했다. 예림은 그래서 자꾸 제 발로 병 안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바보같이 또 물속에 머리를 처박는 꼴이었다.
예림은 솔직히 서운했다. 이유는 몰랐다.
김예림은 금붕어를 키웠다. 우연히 마트에서 받은 묶인 봉지 안에 갇힌 생명이 불쌍했다. 움직여대는 오렌지빛 꼬리를 보며 김예림은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러웠다. 어항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모습이.
그 뒤로 이따금 김예림은 이상 행동을 보였다. 물을 잔뜩 받아놓고 그 안에 얼굴을 담그는 거였다. 그게 반복되니까 1분을 넘기는 건 금세 수월해졌다. 예림의 목표는 금붕어처럼 물속에서 숨을 쉬는 거였다. 하지만 매번 참던 숨을 들이켜면 고개가 떠올랐다. 그건 본능이었다. 사람은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없다. 오래전 아가미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예림아 나 헤어졌어.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의외로 담담해서 예림은 하마터면 속아 넘어갈 뻔했다. 어두워서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코끝과 눈가가 붉었다. 언니 울었죠. 으응…. 긴 정적이 오갔고 그건 때로 소음보다 시끄럽다. …예림이는 남친 사귀어 본 적 없지. 네.
넌 첫사랑 꼭 좋은 사람이랑 해.
김예림의 마지막 겨울이었다.
유난히 길고 추웠던 겨우내 김예림은 시집을 몇 권 선물했다. 그건 나름의 위로였다. 가끔은 막대사탕도 함께였다. 정갈하게 붙여진 사탕을 물끄러미 보던 승완은 픽 웃었다.
둘은 꽤 자주 예림의 방에서 놀곤 했다. 침대 옆쪽 벽에는 커다란 세계지도가 붙어있었다. 하루는 예림이 물었다.
"언니는 죽기 전에 어디 가고 싶어요?"
그 말에 승완이 손끝으로 짚은 지점은 체코였다.
"여기서 찍은 영화를 봤는데 그 이후로 가고 싶어졌어. 꽤 근사한 영화였거든 고요한 분위기라던가 아름다운 건물… 박물관, 교회, 다리 그런 거… 그리고,"
너도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의 스파크가 어디로 튄 것인지 생뚱맞은 승완의 말에 예림은 가만히 웃었다.
봄이 되면 예림은 2학년 승완은 3학년이 되는 거였다. 그래야 했는데, 승완이 없었다. 예림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혹시…손승완이라고 있나요? 걔 외국으로 떴을걸? 캐나다였나. 예림은 심장이 철렁 떨어진다는 말을 실감했다. 말도 안 돼. 이틀 전까지만 해도 우리 집 금붕어를 구경하고 같이 따뜻한 이불에 누워서 끝나지 않을 이야기를 잠들기 전까지 나눴었는데…나한텐 말도 없이 그렇게 멀리 떠났다고. 예림은 처음엔 부정했다. 그리고 곧 화가 났다. 그러다가 하얀 이불 끌어안고 손승완 돌려달라고 빌었다. 우울했다. 집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수조가 된 것 같았다. 사실 늘 젖어 눅눅했다. 다만 손승완이 김예림의 아가미였을 뿐이었다.
더는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밖에 나가는 게 무서웠고 손승완 없으면 딱히 의미가 없었다. 대신 예림은 집에서 글을 썼다. 건네지 못한 문장들은 몇 권의 소설로 탄생했고 그건 예림의 세계를 이루는 전부였다. 그렇기에 홀로 고독함을 몰랐다. 줄곧 몇 년을 타인과의 교류 없이 지냈다. 어쩌면 조금은 외로웠을지라도.
본인 얘기를 쓰기로 결정한 건 충동이었다. 왠지 여기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 환상을 그리는 일에는 이골이 난지 오래였다. 좋게 보내줄 수 있을 때 보내고 싶었다. 지금까지 겹겹이 쌓아올린 것들을 제 손으로 무너뜨릴 시간. 예림은 왠지 들떴다.
마지막으로 일기를 쓴 게 언제였더라… 예림은 이사온 뒤 한번도 펼친 적 없는 일기장을 꺼내들었다.
[10407 김예림]
고작 숫자 다섯 개에 승완이 생각나 눈을 감고 천천히 심호흡했다. 지난 날들에 대한 일종의 속죄였다. 그럼 이 글은 속죄양일까. 누구에게 던지는지 모를 질문을 흘려보내며 예림은 일기장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예림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얀은 프라하로 떠났다. 자신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인 셈이었다. …그는 그를 죽이고 싶었다. 싫어하는 만큼 아주 고통스럽게. 다리 위의 그는 헛숨을 들이켰지만 그런다고 발 밑의 강이 모두 삼켜지지는 않았다. 여기서 떨어지거나 말거나 결국은 둘 다 무서울 뿐이라고 그렇게 세뇌하며 떨어지는 순간, 여긴 차갑기만 한 게 아니라며 물살이 속살거린다. 곧 공기만이 들어차야 할 그의 폐부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그럼에도 그만두지 않았다. 더 이상 내뱉을 숨이 없을 때, 비로소 그는 물 속에서 숨을 쉬었다. 영원희, 희미하게, 아주 처언천히. 자연의 온도는 체온과 같아서 그가 강이 되는지, 강이 그가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가라앉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그녀의 눈은 서서히 감겼다.
마지막 출판 계약을 마친 예림은 얼마 전 끊어둔 프라하행 티켓의 출발 날짜를 다시 확인했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서이다. 출발까지 세 달이나 남은 편도 티켓. 남은 시간동안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했으나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아 집으로 가던 길 우연히 지나친 꽃집에 들어갔다. 곧 다시 나온 그는 흰 라일락 다발을 손에 쥔 채였다. 오후 4시의 햇살을 잔뜩 머금은 혼자 살기에는 외로울 정도로 터무니없이 넓은 집안을 오랜만에 아주 찬찬히 뜯어보며 예림은 생각했다. 내가 사라지면 이 집은 누구의 소유가 될까. 그리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의 흔적과 삶이 들어차는 상상을 한다.
초여름의 프라하 공항은 선선했다.
챙길 짐이 얼마 없어 수화물을 부치지도 않았다. 택시를 타고 예약한 숙소로 움직였다. 집주인과 영어로 간단한 대화를 나눈 예림은 벌써 어둑해진 창밖을 바라봤다. 여긴 참 고요하구나.
예림의 일과는 간단한 식사와 산책이 전부였다. 쇼팽의 녹턴 4번이 듣고 싶어지는 날들이었다. 스피커라도 가져올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후회로 남지는 않았다. 그냥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가벼운 생각들의 연속이었다. 느리고 모든 것이 평화로워 보이는, 마냥 게으르지는 않은 이 도시에서 승완과 나고 자랐다면 조금 달라졌을까.
예림은 다리 너머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딛었다. 다시금 옥상에서처럼 난간에 몸이 걸렸다.
이제야 찾아서 미안해.
소설에도 쓰지 못한 장면이었지, 아마.
한순간도 잊은 적 없는 그 얼굴은 늘 그려온 그대로 다시 앞에 존재했다. 열일곱의 김예림이 스물여섯이 되는 동안 스물일곱이 된 열여덟이었던 손승완은 예림이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새로 상상해온 승완의 모습과 똑 닮아있었다. 다른 점은 승완이 울고 있다는 점, 그리고 예림이 울고 있다는 점이었다.
승완과 예림은 손을 맞잡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예림은 더이상 소설을 쓰지 않았다. 승완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비로소 다시 서로의 호흡이 되었다.
에필로그
그 겨울 승완이 발견하지 못한 시집의 마지막 페이지가 있다.
당신이 나의 호흡입니다.
2015.12.1
김예림